🌿 첫 번째 씨앗으로 모시게 되어 반갑습니다. 간단한 자기소개와 함께, 최근 고마움님이 일상에서 가장 마음을 쏟고 있는 일은 무엇인지 알려주세요.
고마움: 안녕하세요, 저는 고마움이라고 합니다. 본명으로 활동해 왔고요, 대학 졸업 후 국제개발협력, 시민사회단체 등 비영리 섹터에서 일용직, 계약직, 정규직 노동자를 거치며 계속 일을 해왔어요. 그러다 지난해 직장을 그만두고, 1년 정도 안식년을 가지며 자신을 돌보는 일에 힘쓰고 있습니다. 요즘은 프리랜서로 통역이나 문화 행사 기획 같은 다양한 일들을 사부작사부작하면서 지내요. 특히 제철 음식을 잘 챙겨 먹고, 춤도 추고 책도 읽으면서 '스스로를 미소 짓게 하는 일'을 미루지 않고 하기 위해 애쓰고 있답니다. 하와이안 훌라를 배우고 가르치는 일에도 마음을 쏟고 있고요.
🌿 임보라 목사님을 처음 알게 되신 때나 인연이 닿은 계기가 궁금합니다.
고마움: 2010년대 초반 학부 시절, 성소수자 인권 동아리에서 활동하는 친한 친구들을 통해 목사님을 처음 알게 되었어요. 생전에 직접 인사를 나누거나 대화해본 적은 없지만, 퀴어문화축제 같은 곳에 가면 마치 고정값처럼 늘 그 자리에 계시는 분이었죠. 멀리서 지켜보면서 '아, 역시 저기 계시는구나' 하며 저만의 내적 친밀감을 쌓았던 것 같아요. 제 주위에 정체성 때문에 교회를 떠나야 할지 고민하는 퀴어 친구들에게 "우리 교단에 이런 분이 계신다"라며 소개를 주로 해주었어요. 제가 다니는 교회에 오라고는 못했지만, 믿고 소개할 수 있는 교회와 목사님이 계신다는 사실만으로도 앨라이(Ally)로서 든든했습니다. 한 가지 고백하자면, 목사님이 남기신 설교는 떠나시고 나서야 찾아서 들어봤습니다.
🌿 멀리서 지켜보시긴 했지만, 그럼에도 마음에 가장 깊게 남아 있는 장면이 있다면요?
고마움: 서울 퀴어문화축제 축복식 현장이 떠올라요. 수많은 친구가 차마 교회에서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마음껏 쏟아낼 수 있는 공간이었고, 무더운 날씨에 부끄러워하며 다가오는 사람들을 환한 미소로 꽉 안아주시던 모습이 기억에 깊게 남아 있어요. 또 하나는 반려동물 축복식이에요. 제가 16살 된 노견과 함께 살면서 이 땅에서의 헤어짐을 준비하고 있어서 더 와닿았죠. '그때는 몰랐지만 미리 알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더라고요. 생명과 비인간 존재들을 향한 사랑으로 가득한 목사님의 걸음이 지금의 저에게도 사랑을 계속 떠올리게 합니다.
🌿 기념사업회 출범과 동시에 든든한 '씨앗회원'으로 정기 후원을 결심하셨어요. 어떤 마음이었나요?
고마움: 늘 '빚진 마음'이 있었어요. 제가 한국 사회에서 이성애자로서 누려온, 평범하고 당연한 권력들을 인지하고 있기에, 혐오와 차별 속에서 먼저 행동하고 고통받았던 사람들을 향한 부채감이 있었죠. 개인적으로 사랑하는 가족과 아주 친했던 친구를 갑자기 떠나보낸 상실의 경험도 컸습니다. 그때 '미루지 말고 내가 할 수 있을 때 바로 하자'고 다짐했었는데, 임보라 목사님의 소천 소식을 듣고 그 생각이 다시 났어요. 가수 김목인 씨의 '한결같은 사람'이라는 노래를 참 좋아하는데요, 저에게는 목사님이 꼭 그런 존재였던 것 같아요. 거기에 가면 항상 있을 거라고 기대했던 사람. 거대한 초록나무를 당장 제가 대신할 수는 없겠지만, 내게 심어주신 씨앗을 잘 돌보며 '작은 나의 나무라도 길러보자'라는 마음으로 가입했습니다.
🌿 2026년에 계획된 기념사업회의 여러 활동 중 가장 기대되는 활동이나, 사업회에 제안하고 싶은 점이 있으신가요?
고마움: 사회운동 현장을 지원하는 일과 무지개 공부 모임이 가장 기대돼요. 한국 개신교가 차별에 앞장서는 모습에 부끄러울 때도 많지만, 어려움이 있는 곳에 늘 함께하는 그리스도인들도 있다는 걸 아니까요. 작지만 그런 사람들이 있다는 걸 계속 알리면 좋겠어요. 그리고 개인적인 바람이라면, 아주 느슨한 형태의 일회성 온라인 기도 모임이 열리면 어떨까 해요. 너무 무겁지 않게, 비슷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기도로 연결되는 환대의 공간이 마련된다면 참 좋을 것 같습니다.
🌿 나의 평범한 일상에서 임보라 목사님의 뜻을 이어가며 산다는 것은 고마움 님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고마움: '아낌없이 사랑하고 더 아낌없이 사랑받으며 사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위로가 필요한 누군가에게 곁을 내어주고 꽉 품에 안아주면서, 다시 충만한 사랑을 돌려받으며 살아가는 일상이요. 다만 한 사람이 모든 짐을 다 짊어지고 가서 지치지 않도록, 누군가 지치면 다른 사람이 옆에서 메꿔주면서 그 무게를 여럿이 나누어지는 연대 또한 목사님의 뜻을 이어가는 길 같습니다.
🌿 고마움 님이 상상하시는 '초록나무의 숲'은 어떤 사람들이 머물고, 어떤 향기가 나는 곳인가요?
고마움: 한 그루의 거대한 나무가 아주 많은 햇빛과 토양을 혼자 독차지하는 숲이 아니었으면 좋겠어요. 키도 넓이도 다 다르지만 작고 다양한 나무들이 여럿 모여 어우러지는 곳. 누구나 온전히 자기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고 머물 수 있는 편안한 숲을 꿈꿉니다.
🌿 마지막으로 이 뉴스레터를 읽게 될 분들, 그리고 앞으로 씨앗이 되어줄 분들에게 전하고 싶은 한마디를 부탁드립니다.
고마움: 여러분, 함께 하고 싶습니다! 무거운 짐도 혼자서 다 지려면 힘들지만, 나눠서 지면 덜 지치고 심지어 그 과정이 재미있을 수도 있잖아요. 혼자서는 어렵지만 우리가 함께 진다면 다 괜찮을 거예요. 저처럼 생전에 목사님과 대화 한 번 나눠보지 못한 사람도 즐겁게 함께하고 있으니, "내가 함께해도 될까?" 고민하지 마시고 흔쾌히 초록나무 숲으로 들어와 주시면 좋겠습니다. |